2019년 여름,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여행은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전혀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집의 대문을 열고 햇빛에 반사된 먼지 너머로 보이는 집의 내부 구조와 익숙한 냄새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2019년 초가을에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집은 팔렸다.
2019년 늦가을에 다시 방문한 할머니 집은 알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집이 되어있었다.
이 비디오는 개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유약함(vulnerableness)을 가지고 있지만, 보호 체계로 작동하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 유약함을 가지고 있는 것들의 형태는 말 그대로 굉장히 상처 입기 쉬운, 혹은 부서지기 쉬운 약한 존재들이다. 이 비디오에서 가장 중점적인 부분은 약한 존재들이 실제의 상황에서 어떻게 보호의 수단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보호 역할을 수행할 때에 보호를 받는 주체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이다.
관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이미지는 XYZ 축과 지평선이 보이는 빈 디지털 세계이다. ‘집’은 기괴한 입체감을 가진 비닐봉지로 포장된, 납작한 디지털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는 외부와 내부의 구조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집과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는 이목구비가 없는 납작한 이미지들의 인물들 또한 이 집의 내부에 기묘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강화할 뿐이다. 뒤를 따라 보호 체계들에 대해 묘사하기 위해 등장하는 실사 이미지는 가상의 집과 이미지적으로 충돌하며 괴리를 형성시킨다. 이 괴리는 해소되지 않은 체 긴장을 유지하는 역할로 기능한다. 뒤의 실사로 구성된 기억의 추적 과정은 조금은 더 감각적인 층위로 관객을 초대한다.
기억의 파편들을 보여주기 이전에 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줄다리기에 비유한다. 이 줄다리기는 곧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과 스스로를 검열하며 이를 단순히 부정하려는 자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주하려는 자신 사이 간의 맞부딪힘이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세 자아 중 이 줄다리기에서 우승하는 자아는 없다. 이 세 자아 모두 우승을 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작업은 어떠한 극복 신화나 성공 신화의 스펙터클을 자아내지 않는다.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위한 보호 피막이 필요함을 발언한다. 이 모든 과정 또한 무의식적 보호 체계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