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시헌

차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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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에 작성한 글 차시헌

작업은 삶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그러한 노력이란, 곧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머리보다 몸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된
생각은 언어화되기보다 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Post-Truth’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이는 진실보다는 느낌이나 감정이 중요해졌다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유튜브나 트위치 같은 1인 미디어들이 보편화하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마다 이야기를 송출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발언하기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에서 송신만큼 중요한 것은 수신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Post-Truth’이 조명받는 이유도 바로 이 수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진실보다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듣고 싶은 내용만
들으려 하는 사람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덕분에 이야기하는 것이 상당히
지치고도 공허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말하기보다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사회학에선 ‘행위’를 심리학이나 행동과학에서 말하는 ‘조건반사적인 반응’ 같은 ‘행동’과는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행위’에는 항상 ‘주관적으로 사념한 의미’가 포함되며, 이러한 행위는
타인으로 하여금 또 다른 행위를 하게끔 만든다고 합니다. 결국 행위는 새로운 방식의 발화인
셈입니다. 그러나 발화와는 달리 행위는 그 피드백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공공을 향한 발화인
셈입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행위들로 점철된 일상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로베르 필리우는 예술이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잘 모르기에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현재를 사는 제게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가 예술의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삶 속에서 수행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도출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에 관한 힌트가 앞서 말한 ‘행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로베르 필리우의 말로 다시 돌아와서, 삶을
흥미롭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노동요가 떠오릅니다. 흔히 노동요는 능률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래는 노동 자체를 흥미롭게 할 뿐만
아니라 리듬을 타게 하며 은연중에 리듬에 맞춰 노동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노동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필리우가 주목했던 예술로서의 특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를
찾는다는 것은 곧, 삶을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것을 넘어, 삶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삶에 적극적이라는 말을 다소 반복하고 있는데, 제가 말하고 있는 ‘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 충실히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적극적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손가락을 다쳐서 키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당면했다고 한다면, 손 대신 발가락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려 하는 것이 아닌, 다친
손가락으로도 어떻게든 타자를 칠 방법을 찾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둘 다 손가락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도 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습니다. 한쪽은
손가락을 쓸 수 없기에 수족의 나머지, 발가락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그 당연함에 대해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미셸 드 세르토는 구조의 전략에 대항한 개인의 창의적 전술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창의적
전술이란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몸담은 사회를 자신에 맞게끔 재전유하는 것입니다.
재전유(reappropriation)란 본래 자신의 것이었지만 빼앗긴 것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것은 샛길일 것입니다. 구조적 입장에서 자연 발생한 도로보단
계획, 정비된 도로가 교통과 운송의 경제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선
직각으로 설계된 도로를 따라 걷는 것보다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 중 실제로 그렇게 다니는 사람에 의해 샛길은 만들어집니다. 즉, 재전유란
생각을 바탕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연함을 비트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저의 실천은 신체의 통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습니다. 명확한
해결법이 없는 증상이 몇 년간 지속되어 어느샌가 당연해져 버린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이에게 아픔에 대해 토로하는 것은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의 반복이고 상황을 개선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남의 일에는 신경이 가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통증은 단순히 머리를 감는
행동조차 주저하게 될 만큼 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움직이기를 멈춘다면 팔목은 더
아프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지쳤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체념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상황은 여전히 저를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한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을 마시면 갈증이 가라앉는 것처럼 통증 또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하기보단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행동하기란, 나의 생활습관이나 움직임을 수정하기보단, 주변의
구조를 활용, 응용하여 통증을 해소할 방안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해소방안들은 결국 ‘어떻게’에 관한 문제들입니다. 이미 있는 구조나 기술, 장치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사람들은 빠르고 멀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을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0.1t도 채 되지 않는 몸을 옮기기 위해 1t 가까운 무게의 쇳덩이를 약 100L 가까이 되는 기름을 태우며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효율의 측면에선 매우 이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비판하기 위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자원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한 결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저의 ‘어떻게’는 형상을 가볍게 소장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때 ‘가볍게’라는 것은 어떤 비유적인
개념이 아닌, 손으로 들기에 부담이 없으며, 물리적인 실체의 중량을 말합니다. 어떤 대상을 오롯이
간직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대상 자체를 소장하는 것일 테지만, 여건이 여의치 못하다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간직하고자 하는 대상과 상동하면서도 가벼운
대안을 찾는 것은 가능한가? 올리버 웬델 홉스는 ‘미래에는 형상이 질료로부터 분리된다.’ 고
말했습니다. 만약 아름다움이 외형에 자리 잡고 있다면, 대상으로부터 그 형상만을 떼어내면 될
것입니다. 홉스의 말은 당시의 사진술을 바탕에 두고 했던 말이지만, 오늘날 3D 스캔을 통해 그것은
더욱 정교하고 충실하게 실현되고 있습니다. 스캔된 형상은3D프린팅을 통해 다시 구체화되는데,
분리된 외형을 다시 붙잡아 놓음으로써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셈입니다.
‘가볍게 소장하기’의 핵심은 입체 형상의 임의 호출 가능 여부에 있습니다. 예로부터 형상을
본바탕으로부터 떼어내어 간직하려는 시도는 지극히 많았습니다. 유럽에서 사랑하는 연인의 그림자
형태를 따는 것을 최초의 그림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외형을 떼어내는 기술은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사진이 그렇고, 4K 비디오가 그렇고,
VR이 그렇습니다. 그 디테일은 매우 정교해졌습니다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웃풋을 통해 고정되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오늘날의
예술은 ‘더는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특별한 계기로 결집하였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체 상태’라 했던 것 같은데, 정말 정확한 평론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수고스럽게 아웃풋 기기의 블랙박스를 해체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만큼 깊이 스며들어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대상의 무게가 블랙박스의 무게로 대체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도루묵인 셈입니다.

임의 호출의 핵심은 생활기술에 내재한 입체적 아웃풋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트위치 등이 생활 속으로 빠르게 침투한 사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위의 사례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생활기기의 접근성이 광범위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것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부가적인 역할 수행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 덕분입니다. 핵심은 바로
콘텐츠 속의 내용이 아닌 콘텐츠로의 접근성에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기기 속 콘텐츠로의 접근에
대한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것이 곧 임의 호출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장치는 이러한 과정에서 출발했고, 계속 연구 진행 중입니다.
장치를 만드는 것은 전혀 새로운 기능의 무언가를 발명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사물 본연의 쓰임과
역할의 범주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그 속에 어떤 가능성을 포착, 발견해내기 위한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신의 가능성입니다. 이 변신은 완전한 전환을 말하는 것은 아닌,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그 안에 내장하고 있는, 혹은 간과되고 있는 어떤 모습을
꺼내 보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르토가 주목했던, 사회 구조의 전략에 맞선 개인의 창의적인 저항은 제도적 차원의
것이 아닌 일상적 차원에서 사회 구조를 스스로에 맞게 변형해가는 창조성입니다. 세르토는 이를
사회, 생산자의 전략에 맞선 개인, 소비자의 전술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용자가 그 자신에 맞게끔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를테면 차례음식 대신
생전 좋아하시던 초콜릿을 대신 올려드리는 것, 사거리의 코너를 대각으로 가로지르는 샛길을
만드는 것, 혹은 제도용 샤프의 클립을 활용해 샤프를 튜닝하며 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 구조를 직접적으로 바꾸거나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장치가 예측가능한 통증을
예방하지만, 통증 자체를 제거하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융통성은 상황으로부터
미끄러져 나와 결과적으로 구조를 비틀어버릴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의
피로와 염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우회 전술로써 제한된 일상에 개구멍을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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