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연meww1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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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는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들.
일종의 반 공간. (...) 우리가 사는 공간에 신화적이고 실제적인 이의제기를 수행하는 다른 공간. (…)
현실화된 유토피아이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
-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1
90년대까지만 해도 욕실은 쾌적함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세탁기와 변기, 세면대가 나란히 붙어 있는 말 그대로 ‘씻기 위한’ 공간이었다. 세면대와 비슷한 높이의 샤워기,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장면들, 어서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욕실 밖 가족의 모습들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욕실의 이미지는 보다 모던하고 쾌적하며 사적인 공간에 가깝다. 내적 갈등을 겪는 드라마 속 인물은 부스 속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연예인은 대리석 욕조와 세면대에서 반신욕을 즐기며 피로를 푼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자 잘 설계된 소비의 공간이다. 중세의 재계일이나 세례식에서 물은 영혼을 정화하며 악귀를 쫓는다고 여겨졌는데, 마치 그러한 의식이 현대의 욕실에서 부활하는 것처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정화에 가까울까, 아니면 다음 날의 피로를 견디도록 만드는 잘 설계된 채 숨겨진 의식에 가까울까?
욕실 안에서 우리는 모든 불결하고, 혼란스럽고,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씻어내고 흘려보내기를 반복한다. 모든 잡생각이 사라진 새하얀 상태가 된다. 그것을 깨끗하다고 말한다. 깨끗함을 위한 용품은 매일 새롭게 등장한다. 계속해서 갱신되는 깨끗함의 이미지는 더 많은 선택을 만들고,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낳는 것은 더 많은 만족이 아니라 더 많은 불안이다. 어떻게 해야 불결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청결로부터 계속해서 부족해지는 상태. 모든 깨끗함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은 인간 본연의 상태로부터 먼 이미지들이다. 적당한 세균과 박테리아는 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깨끗한 용품들의 생산이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깨끗함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욕실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2
오브제들은 신체에 기준을 둔 스케일로 제작했다. 길에서 수집했거나 쓰고 남은 사물들, 마트나 다이소 편의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사물들. 그런 사물들이 지금 소비사회의 문제와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했고, 폐품과 자연물과 진열된 물품들의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욕실이라는 비유적-연극적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그 안에서 다루려 했다. 오브제들을 배우이자 퍼포머로 해석하였고, 그것을 움직이게 하려 했다.
2.1
방. 공간. 펼쳐진 무대. 몸의 확장이자 세계의 축소. 나의 방이자 누군가의 방, 속으로 얽혀드는 수많은 몸을 부르는 하나의 몸. 언제나 나는 하나의 방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감각이 백색으로 물드는 그곳. 그 안에 한 명의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의 얼굴은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곳이 욕실임을 알아차린다.
2.2
어릴 때 하던 놀이를 기억한다. 잠수한 채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거품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금세 숨이 막혔다. 비누와 물을 섞어 입으로 불면 비누방울이 생겨났고, 물방울도 거품도 아닌 묘한 빛의 구체에 매료되어 바라보곤 했다. 그것은 인체로부터 먼 짙은 비누향의 세계도. 혹은 나르시스를 죽음으로 이끈 물의 세계도 아닌 다른 어떤 세계의 순간이다. 쭉,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3
인간의 모든 활동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공간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밀접한 영향을끼친다. 그것은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역사가 쌓이고 사회 정치적 관계들이 엮여 이뤄진 공간이다. 하나의 공간을 가져와 구조와 그 안에 얽힌 관계들을 드러낸다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그 안에서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경험이 전시장 밖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