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mbus
performance, 30 min, 2019
2019년 12월 29일 오후 네시, 오후 일곱시 반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은 보호되지 않은 채로 모든 곳을 가로질러야 하며, 숲에서 거대한 나무는 주인공 머리를 스치며 넘어지고, 엘리베이터는 적이 들어오기 직전에 닫히며, 영웅은 오로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느리게 총알을 피하고, 서로와 무기는 어느 타이밍을 기다리며 늘 서로를 안 맞히고, 그리고 배경은 많이 부서질수록 좋다. 이와 같은 적, 건축, 주인공이 맺은 약속을 추적한다면 자연, 폭력, 인과의 면면에 깃든 이야기의 조건들이 드러난다. 다시, 단 하나의 의도를 위해 모든 사물이 움직이고 맞물리고 부서지는 것을 액션 영화의 다중적인 몸이라고 한다면, 적, 건축, 주인공이 이루는 약속들을 거꾸로 또다른 하나의 의도로 다시 조일 때, 하나의 공연을 만들며 모든 힘이 기화되는 조건들의 결합과 타이밍, 힘의 범위, 움직임의 순서가 순전하게 구체화 될 수 있다.
캐스팅된 사람들이 수많은 액션 영화의 장면들에서 지축이 바뀌는 것을 평평한 바닥에서 미끄러지며 연기할 때, 이 중 카메라를 든 사람은 아주 오래된 한 권의 촬영 매뉴얼을 제멋대로 혹은 우연적으로 번역하면서 돌아다닌다. 이 매뉴얼은 1930년대부터 1968년까지 헐리우드 영화를 뚫는 외설과 폭력의 묘사에 대한 상세한 형식적 규제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1930년대의 키스신을 촬영하는 방법을 언젠가 누가 공막렌즈를 착용하는 것에 베껴쓸 때, 이렇게 임의로 연결된 수위는 당장의 우연 속에 섞여 알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닮은 두 개의 몸짓,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는 힘과 스트레칭이 교차할 때, 온전히 머물거나 모이거나 쫒거나 달아나는 것은 같은 셈법으로 변하고, 내 힘과 누군가의 움직임은 구분하지 않는 것이 된다. 더 이상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힘(1), 앙갚음이 없고 해결을 모르는 순서는 다시 액션 영화의 다중적인 약속처럼 캐스팅된 사람들을 대한다. 바로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하나의 마음만 가지고 제 의도 대로 움직이기로 약속할 때.
(1) 교차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4km 4kg
performance, 2016 -
2019년 12월 30일 오후 네시
한 명이 두 명이 진행하는 씨름의 생중계 해설을 읽고, 나머지는 선수가 되어 처음으로 들으면서, 그들의 최대한으로 경기를 재연한다. 모든 읽기는 유튜브에 게시된 것을 그대로 따른다. 한 명의 퍼포머가 그것을 읽는다. 일련의 내용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되면서 경기의 인과를 설명하지만, 더욱 비문이 되거나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들린다. 해설에 남아 있는 슬로모션, 리플레이와 같은 생중계 영상의 특징은 듣는 이에게 문장 순서대로 다가오기 때문에 일련의 편집도 한 흐름으로 이어져서 표현된다. 읽기 속도는 처음부터 퍼포머들이 재연하는 속도와 조율하여 느려진다. 서로의 몸이 엉키는 것은 실황 당시의 시간과 어긋나기 일쑤며 언급된 만큼은 성공하면서도 씨름과 한참은 멀어진 동작과 호흡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확률적인 사고로, 끊긴 설명이나 추상적인 말의 밀도 앞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매번 결정했고, 연습되지 않은 마음 앞에 운도 그들을 여러 번 도왔으며, 표현할 수 없는 말에는 잠자코 있었고, 무엇보다 정확한 구현을 위해서 언급된 상대의 동작에 언급되지 않은 자신의 움직임으로 도와야 했다. 스포츠 경기와 중계 해설의 조건 속에서 말과 움직임의 뒤틀림이 인과율의 전복된 상황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2부에서는 나머지는 같고, 경기 해설에서 각 선수의 이름이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지워져서 불린다. 여기서 퍼포머들은 재연의 와중에서 말을 주고 받는다. 이것은 해설에서 선수 각각의 이름이 지워지고 매번 ‘당신’이라는 호칭이 두 명에게 다가올 때, 누군가 이행할 행동마다 상대의 동의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짧은 말은 성별, 승패로 결정되는 씨름의 규칙들을 가변적인 힘의 영역으로 변화시키고, 재연을 이어가기 위한 방책인 동시에 해설에 종속해가는 기존의 층위들을 방해한다.